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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불면인

불면인 #42 . 여자 . 대화

여자


그날 그 시간에 자신이 왜 그곳에 있었는지 여자는 정확히 기억한다. 평소에 그렇게도 진저리치던 동네를 왜 걷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바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집에 돌아가기 싫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여든아홉 개의 계단을 올라가 개찰구를 통과하고, 다시 마흔한 개의 계단을 올라가 전철을 기다리고, 전철을 타고, 시간이 흐르고, 전철에서 내리고, 버스로 두 정거장의 거리를 걷고, 언덕길을 오르고 나서도 예순여덟 개의 계단을 더 올라야 닿는 집. 걸어야 하는 길은 구부러지고, 비뚤어지고, 높고, 멀었다. 뜨거운 여름이나 찬 겨울에는 일터에 나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일보다 더 고됐다.


여자는 남자를 몇 번밖에 보지 못했다. 남자는 집을 짓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한겨울에 쓰레기처럼 나뒹구는 공사 자재용 나무판자를 마치 레고를 맞추듯 이리저리 깔고 세우고 덮고 있었다. ‘저 정도 높이라면 사람이 서서 살 수 있는 집은 아닐 텐데…’ 여자는 꽤 오래 그 자리에 지켜 서서 남자의 집 같지 않은 집을 짓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원인 모를 산책이었기에 이유 없이 낯선 사람을 지켜보는 일도 이상할 게 없었다. 남자는 성실해 보였다. 판잣집을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마치 대목 슬하에서 제대로 된 한옥이라도 짓고 있는 것처럼 진지한 표정이었다. 여자는 문득 자신의 집이 떠올랐다. 콘크리트 벽, 콘크리트 바닥, 콘크리트 천장. 무엇 하나 제대로 반죽되지 않은 채 그대로 굳어버린 거대한 인간들의 벌집. 그 거대한 벌집 위로 해가 뜨고 지는 세상. 휘영청 떠오른 달이 보였다. 열두 번 보름달을 마주치면 일 년이 흐른다. 참으로 무심하고 짧은 세월. 그 사이에 누군가는 남이 지어주는 집에서 살지 못하고 제 손으로 제 집을 짓는다. 여자는 잠시 쭈그리고 앉아 남자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남자의 손놀림은 서툴렀다. 어쩌면 추위에 손이 곱은 것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맨손이었고, 걸치고 있는 검은 외투는 낙엽처럼 가늘고 얇아 보였다. 잠시 허리를 펴고 숨을 돌리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집짓기에 골몰하는 모습. 그의 모습은 망망대해를 돛도 달리지 않은 뗏목 하나에 의지해 항해하고 있는 사람처럼 외로워 보였다. 남자의 곁에서 고양이 서너 마리가 배회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무신경한 모습이었다. 남자는 집을 짓고 있었고, 고양이들은 축구라도 하는 듯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자신들의 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엉뚱한 자리에 엉뚱한 모습으로 엉뚱한 모양새의 집을 짓고 있는 그를 보고 있다가 문득 자신은 이 남자보다 못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낯선 사람과 말을 섞기에는 위험한 시각이었고 몸은 그새 뻑뻑하게 식어있었다. 여자는 그대로 일어나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눌하게 움직이던 남자의 손처럼 두 다리가 삐걱거렸다. 버스는 오늘도 연착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집안청소를 하지 않게 되었다. 오직 비질과 물걸레질뿐인 일터에서 돌아오면서부터는 집이 두더지 굴이 되어있어도 자연스레 외면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싱크대 아래에 끼인 채로 곰팡이가 슬어버린 걸레, 속사정을 들여다보기조차 두려운 싱크대 주변의 검은 비닐봉지. 검은 비닐봉지는 겉에도 곰팡이가 슬어있었고,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초미립자의 어린 곰팡이들이 공기 중으로 퍼져나갔다. 사람의 손이 오래 닿지 않은 벽들도 마찬가지였다. 마르고 젖기를 반복해온 벽지 위에는 마치 악마들의 초상을 계보대로 그려놓은 듯 어둡고 습한 표정의 얼룩들이 구석구석 가득했다. 붙박이 장롱 안에 걸린 마름모꼴 패턴의 망토 위에서는 여러 마리의 거미들이 자리다툼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망토 위의 땅은 성기기 짝이 없으니 누구의 땅이 되어도 상관없었지만 바라보는 자의 마음은 서늘했다. 거실 바닥에 깔린 신문지 위에는 단단하게 굳은 밥알들이 풀 먹인 모래알처럼 엉겨있었다. 여자는 그대로 신문지 위에 쪼그리고 앉았다. 여자의 시선이 신문 위의 한 사진 위에서 멈췄다. 신문 속의 사진에는 고기 파는 낯선 중년 여자의 얼굴과 정육점 차양 아래에 걸어놓은 돼지와 닭의 맨살들이 담겨있었다. 정육점 여주인의 이마와 볼과 목에 새겨진 주름은 그간 고기를 잡으며 뭉툭해진 칼날이 스친 자국처럼 굵고 깊었다.


문득 고요가 닥친다. 창가로 발을 옮기던 여자의 몸이 잠시 멈추더니 곧 창문을 활짝 열고 창틀에 몸을 기대고 움직일 줄을 모른다. 비가 다가오는 풍경을 젖은 눈길로 바라본다. 여자는 생각한다. ‘거대한 먹구름이 나를 향해 다가온다. 이것은 진정 비일까? 이것은 진정 나에게 오고 있는 것일까? 만약에 내 몸에 문신을 한다면 나는, 내 혀가 편히 닿는 곳에 새기고 싶다. 떨어지는 빗물처럼 언제든 내가 원할 때 맛볼 수 있도록.’ 피로가 마른 여자의 몸을 녹인다.


30분이나 잤을까? 여자는 배를 파고드는 한기에 복통을 느꼈다. 눈을 떴다. 옆자리에 누운 늙은 여자는 담배 불에 뚫린 자국이 무성한 무지개 색 담요를 가슴 깊이 끌어안고 잠들어 있다. 노파가 여자의 옆자리를 차지한 뒤로 계속되는 이불 전쟁이다. 여자가 뒤척이자 노파의 발바닥이 여자의 종아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노파는 그냥 집을 나왔다고 했다. 자식이 패가망신한 것도 아니고, 모난 자식들이 자신을 요양원에 내팽개친 것도 아니고, 그저 그런 어느 날, 아파트 앞 화단에 걸터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던 중에 아파트 너머로 지는 해가 문득 답답해서 산 너머로 떨어지는 노을을 보려고 길을 나섰다가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렸을 뿐이라고 했다. 여자는 집을 찾아주겠노라고 노파에게 이야기했지만 노파는 고개를 저었다.

“이젠 집보다 길이 더 편해.”

어느 길을 거쳐 왔는지, 잠은 어디에서 어떻게 잤으며 끼니는 어떻게 해결했는지, 여자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래도 가족들이 걱정할 텐데요.”

“부모 걱정 같은 걸 할 줄 아는 아이들이 아니야.”

여자는 엉겁결에 노파의 보호자가 되어있었다. 길은 거칠었다. 계절의 폭력과, 길에서 사는 남자들의 폭력과, 길을 점령한 무자비한 짐승들의 색정으로 가득한 눈길을 피해 다녀야 했고, 하루 한 끼의 식사를 희망하는 것이 어려웠다. 길은 추위와 더위와 찬바람과 습한 대기를 피할 곳을 찾아 한없이 걸어야 하는 곳이었으며, 어떤 노력으로도 필요한 모든 상황에 만족할만한 결과를 결코 얻어낼 수 없는 곳이었다. 기대가 뿌리내릴 수 없는 땅. 사막에서 사는 인간에게는 생존의 법칙이 존재할지 모르지만 길에서는 생존의 법칙 같은 게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매일매일 다른 얼굴을 한 질긴 고통에 노출되었고, 아무리 머리를 짜내고 아무리 몸을 굴려도 쉽게 벗어나지지 않았다. 구원이라고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는 곳. 그래서 더욱 정착하기 어려운 곳이 길이었다. 그토록 거친 길이 어떻게 집보다 편하다는 건지 여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노인이기 때문에 수컷들의 폭력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겨울의 거리는 나이든 노파에게는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노파는 허리춤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여자에게 주었다. 여자는 시장골목 안의 한 분식집에서 삶은 계란 세 개를 샀다. 세 알을 모두 노파에게 먹였다. 여자는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다.


여자는 자신의 집으로 노파를 모셨다. 노파의 시선이 회전그네처럼 천천히 사방을 살폈다. 벽 한 편에 서너 개의 박스가 놓여있고 무지개 색 담요가 가지런히 접혀있었다. 구석구석 가난과 세월의 더께로 알뜰히 점령당한 모습의 집이었다.

“이게 제가 가진 전 재산이에요.

오늘부터 저랑 같이 여기에서 사시는 거예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지실 때까지요.”

여자는 그 시간이 빨리 오기를 기대했고, 노파는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늦여름부터 노숙을 시작한 노파는 초겨울이 되도록 여자 옆을 떠나지 않았다. 이불을 나누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여자는 노파의 마른 몸과 체온이 싫지 않았다. 더 추워지면 어떻게든 노파를 집으로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한겨울의 거리는 노인에게는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젊은 사람들도 망가지고 얼어 죽기 일쑤인 긴 겨울. 여자는 가끔 일 년 내내 여름만 계속되는 나라에서의 노숙을 상상하며 미소를 짓곤 했다. 상상은 따스했지만 현실의 언 몸을 덥혀줄 만한 힘은 없었다. 멀리서 신문지 펄럭이는 소리가 들렸다. 가끔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모를 바람이 역 구내를 쓸고 지나갔다. 쿵~. 옆으로 누운 채 몸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던 여자가 벽에 뒤통수를 들이받았다. 뒷골이 뻐근해지면서 역사 안으로 부는 얼음장 같은 바람이 두개골로 쏙 빨려 들어가는 느낌. 여자는 멍한 머리를 손바닥으로 꾹꾹 누르며 실소를 지었다. 몇 시쯤 됐는지 궁금했지만 시간을 확인하려면 50미터나 걸어서 코너를 돌아야 한다. 여자는 조금 더 눈을 붙이기로 하고 노파의 몸을 살짝 굴려 담요를 끌어당겼다. 등 돌린 노파의 목 뒤로 공룡의 뼈 같은 것이 울퉁불퉁하게 흐른다. 여자는 문득 심장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왜 돌아가지 않을까. 따뜻한 집, 따뜻한 옷, 따뜻한 밥, 손자들의 재롱. 그 모든 안락과 달콤한 식사보다 거리가 더 좋다는 심보는 대체 뭘까.’ 여자는 담요를 끌어올려 노파의 목을 꾹꾹 감쌌다.


물이 흐르고 있었다.

딱 한 번 먼 계곡에 가본 일이 있었다.

거대한 절벽 앞,

계곡 위에 걸린 구름다리 위에서 물보다 맑게 흐르는 시냇물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경사가 느껴지지 않는 계곡에서도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무엇을 망설이는가?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에는 다리의 높이도 물의 수심도 너무 낮았다.

늦가을이었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누구와 함께였더라?’ 생각이 나지 않는다.

‘운전도 하지 못하는 내가 버스를 타고,

또 버스를 타고, 그 먼 곳까지 혼자 갔을 리는 없고.’

여자가 기억을 더듬는 동안 어느새 여자는 물 위에 떠있었다.

물보다 맑은 물이었다.

몸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물은 여자의 등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여자의 몸은 산란을 위해 상류로 돌아가는 송어처럼 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여자는 문득 있지도 않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 앉은 것처럼 따스한 기분을 느꼈다.

편안하고, 가볍고, 아늑했다.

마주 오는 물살이 여자의 몸과 머리칼을 적셨지만 여자는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

‘그래 굳이 고향으로 가는 게 아니더라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분을 느낀다는 건 행복한 거야.

그나저나 내 고향은 어디일까?

내가 도착할 곳은 어디일까?’

물보다 맑은 물살을 가르며 한참을 올라가고 있는데,

무언가 따스한 것이 이마를 어루만졌다.


지난밤에 누운 그곳이었다. 지하철 구내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조금은 훈훈한 기운이 느껴졌다. 노파가 일어나 앉아 여자의 이마를 쓰다듬고 있었다.

“꿈을 꾸었나?” 노파가 물었다.

“네.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이요.”

“고향이 어디라고 했지?”

“몰라요.” 여자는 맥없이 미소 지었다.

“꼭 고향이 어디인지를 알아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 아니지.”

노파가 말했다.

무지개 담요로 꽁꽁 싸매진 여자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이마를 어루만지던 노파의 손에도 땀이 배어있었다. 노파의 몸뚱이는 기름기 없는 고철처럼 삐걱거렸다.


여자는 가끔 노파와 함께 길을 나서야 했다.

“산 너머로 지는 해를 보고 싶어.”

늙은 노파를 두 번이나 가출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노파와 함께 걸어야 하는 길은 혼자 걷는 길보다 서너 배는 멀었고, 노파에게도 여자에게도 험한 길이었다. 하지만 죽음이 목전에 있더라도 아직 숨을 거둔 것은 아니므로, 그날 이후로 여자는 가끔 노파와 함께 산 너머로 지는 해를 보러 가고는 했다.






대화


겨울바람에 봄바람이 섞여 들기 시작했다. 여전히 차가웠지만 바람의 꼬리가 늘어지며 볼을 쓰다듬는 순간, 매섭게 시려야 할 바람의 끝자락에 포근함이 묻어있었다. 채찍의 세월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녀에게 물었다.

“외로워도 참을 수 있겠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당신 옆에 있으면 외롭나요?”

내가 말했다.

“제 마음은 멀리 여행을 해요.”

그녀가 물었다.

“멀리요? 아주 멀리?”

내가 대답했다.

“네. 아주 멀리요.”

그녀가 말했다.

“우리에게도… 집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잊고 싶은 것이 있어요.

뭐죠?

제 비밀들이요.


이제는 그녀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그녀가 풍기던 불안감은 지금도 고스란히 그 모습 그대로의 덩어리로 남아있다. 그녀의 불안은 잘 단련된 고요의 늪 속에 잠겨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을 건져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