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불면인2018. 11. 30. 19:01


꿈 | 해변

거친 파도가 모래톱을 때린다.

하늘은 잿빛으로 물들었고,

바다는 먹으로 염색이라도 한 듯 한없이 검다.

사람은커녕 사람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고,

갈매기는커녕 갈매기의 울음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무채색의 하늘과 어두운 바다가 무겁게 땅을 흔들고,

거센 파도의 굉음이 소리를 지배한다.

나는 해변으로 이어지는 숲의 가장자리에 앉아

멍하니 어둠의 그러데이션을 감상하고 있다.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한 채 무한대로 시간이 흐른다.

암흑의 풍경에 잠겨있으면서도 나는 잠의 기운에 빠져든다.

무릎을 모으고,

두 팔로 무릎을 감싼다.

잠시 파도가 잠잠해진다.

온몸의 살갗이 고요에 날을 세울 무렵,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고요를 깨뜨린다.

비가 내린다.

손에 닿을 듯 낮게 깔린 먹구름이

드디어 비를 뿌린다.

멀리 수평선의 끝에서 짙은 안개 한 줄기가 피어오른다.

안개마저도 검다.

빗방울의 개수가 늘고,

두세 방울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무게를 더한다.

옷이 젖어간다.

등이 시려온다.

더욱 세게 무릎을 끌어안는다.

외롭다.

바다와,

하늘과,

구름과,

파도와,

비와,

내가 있는데,

외롭다.

파도가 잠든 동안 빗소리가 공명의 여백을 메운다.

여전히 아무도 없다.

나 외에는 아무도 없다.

바람이 숲을 흔들고 지나간다.

바람과 비의 이중주가 한동안 이어진다.

아무도 없고,

여전히 외롭다.

그때,

숲속 깊은 곳으로부터 서걱서걱 풀 스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괘종시계의 초침 소리처럼 일정하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듯하더니,

그대로 스쳐지나간다.

소리는 여전히 일정하고,

내게서 점점 멀어진다.

얼마나 지났을까?

풀잎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무렵,

해변의 저쪽 끄트머리에서 어린 소년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비바람 부는 날에는 어울리지 않는,

지나치게 가벼운,

낡은 옷차림이다.

손에는 작은 가방이 들려있다.

소년은 모래사장 위에 가방을 내려놓는다.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오래 수평선을 응시한다.

검고 무거운 수평선마저 소년의 시선이 따가운 듯 얼굴이 어두워진다.

바닷길 너머로부터 짙은 먹구름이 몰려온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무너지고,

하나의 거대한 어두움으로 덩어리진다.

소년은 종아리에 힘을 주고 바다를 바라본다.

소년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바다 구경을 마친 소년이 가방을 연다.

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소년의 여린 머리칼이 비바람에 나부낀다.

비에 젖고 거칠게 헝클어지지만 소년은 신경 쓰지 않는다.

소년은 가방 안으로 손을 넣는다.

소년의 손에는 돌멩이가 쥐어져있다.

잠시 긴장이 흐른다.

소년의 다리가 움직이고,

양팔은 춤을 추듯 흐느적거린다.

해변의 모래를 발로 지치며 힘차게 달리다가,

바다를 향해 손에 쥔 돌멩이를 힘껏 내던진다.

정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바다를 향해 던진 것인지,

하늘을 향해 던진 것인지,

알 수 없다.

소년은,

가방 안이 텅 빌 때까지,

똑같은 춤을 반복해서 춘다.

소년의 몸이 흠뻑 젖는다.

숨이 가빠진다.

돌멩이를 모두 던져버린 소년은,

젖은 몸과 눈동자로 다시 바다를 응시한다.

시간이 흐른다.

어느덧 빛의 흔적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밤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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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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