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파.’

왜 배가 고프지?

‘밥을 못 먹었으니까…….’

왜 밥을 못 먹었는데?

‘밥 지을 쌀이 없거든.’

왜 쌀이 없어?

‘우린 가난해.’

왜? 왜 가난해?

‘그건 나도 몰라. 아무튼 우리는 내 기억이 시작되던 날부터 내내 가난했어. 가난은 힘들어.’

그래. 가난은 고통이지. 인간을 행복의 건너편에 있는 황무지에 던져놓고 오직 고통만 먹이는 절망의 사육장이야. 동물들은 풍요도 굶주림도 함께 하는데, 왜 유독 인간들이 공존하는 곳에만 풍요와 빈곤의 차별이 생기는 걸까?


아이는 아주 오래전에 먹어본 적이 있는 미제 소시지 몇 알을 떠올렸다. 그것은 버터처럼 느끼하고, 버터처럼 고소하고, 버터처럼 짠 소시지였다. 흰쌀밥 한 숟가락에 불그둥둥한 미제 소시지 한 입을 베어 물면 입 안에서 천국이 요동치는 느낌이었다. 미제 소시지를 먹어본 기억이 있는 걸로 보아 가난이 아주 오래되지는 않은 모양이었으나 적어도 여섯 해 이전에 벌어진 일이었음에는 확실했다. 아이는 이제 열두 살. 오늘로서 육박칠일 째 금식 중이다. 금식을 선포한 것은 아이의 엄마였다. “하나님께 쌀을 달라고 기도하자.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건 하나님뿐이야.” 엄마의 대사를 듣는 순간 아이는 ‘하나님이 쌀도 주시나…?’라고 생각했지만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며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정체 모를 약품 냄새로 가득했던 수돗물이 이제는 조금 밍밍한 맛을 내고 있었다. 아이는 새벽녘에 엄마가 대야에 담긴 수돗물에 흰 빛깔의 모래알을 넣는 것을 우연히 보았다. 물에서는 짠맛이 돌았다. 다행히 새벽기도에는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안 깨우고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지만 끝까지 잠든 척 버티다보면 초침이 한 바퀴 두 바퀴 바쁘게 회전했고, 엄마는 새벽기도에 늦지 않으려고 먼저 집을 나서곤 했다. 끄으으으윽 하며 판자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자 아이는 벌떡 일어나 바가지를 들고 대야에 받아둔 물을 퍼서 벌컥벌컥 마셨다. 한여름 새벽더위에 풀칠이라도 해놓은 듯 몸이 진득거렸다. 아이는 다시 잠들기로 결정했다. 오늘이 지난다고 해서 무언가를 먹을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허기진 몸으로 밖에 나가 노는 것보다는 잠을 자는 쪽이 배고픔을 견디기에도 낫고, 남은 시간을 보내기에도 한결 수월할 거라 생각했다. 엄마는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아이의 엄마는 새벽기도를 마친 후에도 교회를 떠나지 않고 기도했다. 기도의 내용은 ‘쌀을 주세요.’였다. 하나님이 정말 쌀을 주실까? 하는 의심 같은 것은 추호도 없었다. 어떻게 쌀이 주어질지는 알 수 없었지만 쌀이 생길 거라는 사실만큼은 그녀에게 쪼그라든 위장만큼이나 선명한 믿음이었고 미래였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어디선가 구슬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도 중에 잠이 든 모양이다. 그녀의 의식은 깊은 허기와 수면의 바닥을 느리게 헤엄쳐 나왔다. 잠에서 현실로 돌아오기까지 족히 몇 분은 걸린 것 같다. 이제 구슬 떨어지는 소리는 두 귀를 두드리는 선명한 현실의 소리가 되었다. 웬 구슬이 이렇게 하염없이 떨어지나……? 그녀는 삐걱거리는 몸을 일으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예배실 문을 밀고 밖으로 나가자 머리가 백발인 한 노파가 몸을 구부리고 앉아 무언가를 줍고 있는 것이 보였다. 현기증에 눈동자의 초점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그녀의 마른 목구멍에서 쇳소리가 울렸다. 노파는 놀란 듯 몸을 뒤로 움찔거리다가 그녀의 얼굴을 보고나서야 안심했다. 복도 바닥에 하얗게 깔린 쌀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여자는 마른 손을 그러모으고 노파와 함께 엎질러진 쌀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노파는 쌀을 줍다말고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노인의 눈은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쌀을 모두 줍고 나자 노파는 쌀 봉투를 여자에게 건넸다. 엉겁결에 봉투를 받아든 여자와 노파 사이에 잠시 눈싸움이 벌어졌다. 여자는 떨리는 손을 감추려고 애썼다. 그녀에게는 거절할 기운조차 없었다.


아이의 몸이 붓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몸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자꾸 목이 말랐다. 아이는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 자신이 죽어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하늘나라로 가는 건가? 죽음은 고통스럽다던데….’


집으로 돌아온 여자는 땀에 흠뻑 젖은 채 겨우 숨이 붙어있는 아이를 보고는 선 채로 눈을 감았다. 허기진 몸뚱이로 겨우 붙들고 있는 정신의 끈이 마치 풀린 실타래처럼 이리저리 난잡하게 굴러다니고 있는 느낌이었다. 지금 이것이 현실일까? 내 아이가 죽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현실인가? 이게 내 현실인가? 내 아이가 죽도록 내버려두는 엄마. 이런 내가 현실인가? 글쎄…. 그런 것 같다.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여자는 쌀 봉투를 내려놓고 수돗가로 나갔다. 내 아이가 죽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하나님께 쌀을 달라고 기도했는데…. 여자는 아이의 입술에 수돗물을 흘려 넣어주었다. 물에 적신 행주로 몸도 닦아주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아이의 푸른 입술에 오래 매달려있었다. 물만 마신 탓인지 눈물은 마르지도 않고 잘도 흘러내렸다. 여자와 아이는 이제 무언가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자는 자신과 아이에게 바로 음식을 먹이지 않았다. 자정이 넘어야 금식이 끝난다. 하나님은 나와 아이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쌀을 많이도 주셨다. 그리고 이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더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쌀이지만, 먹으라고 주신 쌀이지만, 약속한 시간은 지켜야 한다. 아이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자정이 되려면 네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여자의 눈꺼풀도 주저앉기 시작했다. 여자는 아이 옆에 몸을 뉘었다.



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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