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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때가 가고, 비와 구름의 시간이 온다.


구름은 더 이상 자신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할 만큼 무거워 보인다. 사람들의 젖은 눈동자가 반딧불처럼 반짝이며 빛난다. 구름이 무거워지는 만큼 세상도 어두워진다. 태양에 그을린 낯빛이 어두운 대기 속에 잠기며 하나의 색을 가진 덩어리로 융화한다. 모공이 열리고, 대기가 살에 스며든다. 느린 호흡으로 흐르는 자연의 시간 속에서 사람들의 껍질이 점점 윤곽을 잃어간다. 흰자위에 검은 점으로 박힌 또렷한 두 눈동자만이 그들이 인간임을 드러낸다. 얼굴은 없고 눈동자만 숨 쉬는 인간. 몸은 없고 눈빛만 살아있는 인간. 빛이 일정한 조도 아래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가로등이 켜지는 문명의 어둠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의 형상이다. 그들의 눈동자는 이미 바람의 고통을 꿈처럼 잊었다. 그리고 어느새 비의 희망을 품고 구름이 대지에 닿기를 기다린다. 오래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그들의 기다림에 회신하듯 하늘이 비를 뿌린다. 희망의 포말들이 높은 대기 위에 겹겹이 쌓이고 곧 방울져 떨어진다. 그들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떨어지는 빗방울로 입술을 적신다. 비는 그들의 몸을 적시고, 영혼을 적시고, 지나간 고통을 적셔 뜨거운 사막의 모래밭 아래로 흘려보낸다. 이제 모래는 바람의 때와는 다른 노래를 부른다. 비에 젖은 사막의 노래는 고요하다. 빗방울이 굵어지면서 사막의 울림이 파도처럼 일렁거린다. 사람들은 비와 사막의 파동을 눈으로 지켜보며 평화로운 얼굴로 밤을 맞는다. 먹구름을 만난 밤은 칠흑처럼 어둡다. 어둠은 소리를 가장 소리답게 하는 정직하고 소박한 무대다. 사람들은 숨소리를 삼키며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회전하는 대지의 발자국소리가 들린다. 소리 없이 움직이는 대지의 미동조차 침묵의 탈을 벗고 육중함을 드러내며 고막을 흔든다. 빗소리가 잦아든다. 먹이를 구하지 못한 매의 울음이 날카롭게 대기를 가른다. 울음소리는 곧 해 아래의 이슬처럼 작은 메아리가 되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잠들지 못한 자들은 사랑하는 이의 살을 어루만지듯 팔을 뻗어 바위에 손을 얹는다. 젖은 바위가 손바닥에 감긴다. 촉촉한 바위의 부드럽고 연한 질감이 그들의 깨진 손톱과 거친 손을 위로한다. 비는 더욱 잦아들고, 잦아든 비는 작은 소리로 소곤거리며 자장가를 부른다. 비구름이 잠든 무리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바람이 잠든 날이니 모처럼 밤도 일찍 잠을 청한다. 비만 촉촉이 남아 밤을 지킨다. 어둠은 요동 없이 고요히 깊은 어둠 속에 잠긴다. 모든 것이 잠든 어둠 속에서 비와 고요가 사막과 사막의 대기를 다스린다. 사막이 잠든 동안 뱃사람들의 돛은 한껏 부풀어있다. 파도의 리듬에 맞춰 항구를 향해 항해한다. 만선은 아니지만 곧 다가올 휴식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하다. 오늘은 사막과 배 위의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밤이다. 바다 위에는 풍랑이 일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충분히 조용한 밤이다. 뱃사람들은 다음의 만선을 기대하며 배 안에서 잠이 든다. 배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사막으로 이어지는 해안가에 정박한다. 일종의 사고다. 배는 여행객을 실어 나르지 않는다. 사막으로 가는 여행객은 없다. 기대하지 않았던 폭풍우를 만나서 잠시 피난하거나 표류 중에 뜻하지 않게 닿는 경우가 전부다. 사막의 사람들 역시 배를 기다리지 않는다. 아무도 사막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필요한 모든 것과 필요하지 않은 모든 것을 강과 사막과 하늘로부터 얻는다. 그들은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생산되는 그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으며, 소유하려들지 않는다. 그들은 모래사막을 벗어나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사막은 그들의 세상이자, 무려 그들의 온 세상이다. 그들은 사막에서 태어나 사막 안에서 살고, 사막 안에서 명상하고, 사막 안에서 씻고, 사막 안에서 결혼하고, 사막 안에 새 생명을 뿌리고, 사막 안에서 죽는다. 그들은 무려 사막 안에서 장렬히 사망한다. 그들의 조상과 그 조상의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태양과 바람에 가죽과 살을 내어주고 이와 뼈와 머리칼을 사막에 바친다. 사막 바깥세상의 사람들은 사막의 사람들이 고립되어있다고, 갇혀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사막의 사람들이 태양과 바람과 모래의 감옥에 감금되어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사막의 사람들은 아무도 스스로 갇혀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모래 감옥 안에서 자유롭다. 그들의 온 세상인 사막과 모래와 하늘뿐인 대지와 대기의 광활함만큼 자유롭다. 태양의 강렬함만큼, 백만 도로 끓는 코로나의 고열만큼 뜨겁게 자유롭다. 도시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고독하므로 사막의 사람들도 당연히 고독할 거라 여긴다. 하지만 사막의 사람들은 고독을 알지 못한다. 대기가 고독으로 가득차고 고독의 강에 빠져 익사의 고통에 시달려도 그들에게는 고독을 깨달을만한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매일 태양을 만나야하고, 가끔 바람과 비도 만나야한다. 혼자만의 시간에도 늘 자연이 함께 있다. 행여나 살 속과 뼈 안에 숨겨둔 몇 조각의 고독이 있을지라도 망각의 강물이 모두 녹여 쓸어가 버린다. 사막의 사람들은 자연이 자신을 구원하도록 내버려두는 법을 안다. 자연 앞에 벌거벗은 몸을 드러내고, 벌거벗은 영혼을 내보이면, 자연은 태양의 눈을 밝혀 상처를 찾아내고, 빗물로 상처를 소독하고, 바람으로 상처를 치유한다. 그들은 자연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없는 모든 일을 자연에게 맡긴다. 자연이 해결하도록 내버려둔다. 그리고 자연은 자신이 흐르는 시간의 길과 만물의 질서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

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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