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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아래의 사막은 불의 세상이다.


불. 사막의 태양은 불 그 자체다. 사막 위에 서면, 마치 태양 위에 두 발을 딛고 선 것처럼 불꽃의 일렁임을 그대로 느끼고 볼 수 있다. 사방이 불붙어있다. 이글이글 타오른다. 태양의 칼날을 피할 그늘이 없다면 태양 앞에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 태양이 지배하는 대지의 한가운데에 홀로 서지 마라. 네 어머니, 네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모든 어머니들이 너의 구원을 위해 태양 앞에 벌거벗고 서더라도 태양은 너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태양 앞에서 인간의, 혹은 인간적인 강인함은 먼지처럼 볼품없다. 태양의 불 앞에 가까이 선 자는 시간을 선물 받지 못한다. 태양을 보았다고 느끼는 순간에 그는 이미 한 줌 재가 되고, 타버린 재마저도 찰나에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태양 앞에 항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태양 앞에 서지 마라. 네 영혼과 육신을 조아려 태양의 거대한 열기 앞에 항복하고 싶다면, 그늘을 찾아 목숨을 부지하라. 태양은 자비로울지 모르나 태양을 사르는 불은 자비롭지 않고, 그 열기는 언어로도, 노래로도, 눈물로도, 설득하거나 막을 수 없는 까닭이다. 태양은 고통을 통해 삶을 더욱 생생히 느끼게 해준다. 그것은 어떤 언어적 비난이나 물리적 공격에서 오는 점진적인 고통이 아닌 불벼락처럼 쏟아지는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고통이다. 태양 앞에서는 철학도, 사상도, 윤리나 도덕 따위도 힘을 쓰지 못한다. 벌거벗은 본능만이 존재할 뿐이다. 뜨거움. 오직 뜨거움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단말마적 고통. 태양은 언어를 가지지 못했으므로 경고하지 않는다. 태양은 귀가 없으므로 비명을 듣지 못한다. 태양은 변함없이 불타며 신이 정한 궤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신의 뜻에 묵묵히 순종하고 있을 뿐이다. 태양은, 엄격하게 자신을 불살라 뜨거울 뿐이다. 꺼지지 않는 불을 몸에 바른 채, 영원일지도 모를 시간동안 빛을 내고 있을 뿐이다.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빛나는 별. 늘 불타고 있기에 오염되지 않고, 오염되지 않았기에 수치를 모르고, 수치를 모르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별. 그리고 홀로 불타고 있기에 늘 외로운 별일뿐이다.


모래사막의 사람들은 강으로 갈 때처럼 처소를 향해 돌아올 때도 쉬지 않는다. 단 하루도, 단 한 시간도 쉬지 않는다. 그들은 긴 시간동안 깨어 걷는다. 걸으며 자신을 들여다본다. 그렇다. 시선은 점점 가까운 곳으로 이동한다. 지평선을 바라보던 눈동자가 대열의 선두로 시선을 옮기고, 대열의 선두를 응시하던 얼굴의 고개가 꺾이며 앞사람의 발뒤꿈치를 쫓아가고, 앞사람의 발꿈치를 쫓는 것에 지쳐버린 시선은 결국 자기 속의 자신으로 눈을 돌린다. 자기 속의 자신 속에서도 더 자신에게 가까운 자신의 자리로 시선은 또 이동한다. 무엇이. 무엇이 그 안에 있는가. 자신 속에 있는 더 깊은 자신 속의 자신의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있는가? 무엇이라 이름 붙일 만한 것이 있는가? 혹은 없는가? 이름 붙일 무엇이 아무것도 없는가…? 껍질. 즉 정숙함, 노련함, 아름답거나 추한 외모와 예의라는 이름을 가진 동적이며 외향적인 형식, 언어의 잣대로 정의되어지는 지성과 학식, 이름 붙일 수 없거나 이름 붙일 수 있는 그 모든 얇음, 혹은 단단한 껍질. 껍질이라는 한 낱말이 내포하는 그 모든 다양한 껍질들. 그 껍질 안에 든 예지, 육감, 거부, 가혹한 오염, 분노, 숙명에 대한 불신, 무질서, 혼돈, 몰락, 상실, 끝내 나마저 없는 공간. 결국, 망각. 그 망각 안에… 그 마지막 알맹이 안에 들어있는 마지막 존재로서의 나. 그러나 내면의 끝에 있는 마지막 나를 들여다보기 전에, 애석하게도 여정은 끝난다. 이제 그들은 자신을 들여다보기에는 너무나도 기진맥진하다. 나 따위가 아무리 중요한들 육신의 그릇이 깨진다면 ‘마지막 나’를 보는 일이 무슨 소용인가. 그들은 모래 위에 몸을 눕히고, 잠시 짙은 어둠의 바다에 박힌 빛나는 모래알들을 세다가 수면 아래의 세상으로 자리를 옮긴다. 짧지만 달콤한 안식. 꿈의 세상은 오늘 문을 열지 않는다. 그들의 노곤한 영혼과 육신이 마른 모래의 대양 아래로 고요히 가라앉는다.


오랜만에 모래사막은 깊은 잠에 빠져있다.

모처럼의 산들바람. 이른 아침의 은은한 태양빛. 바위 곁 그림자 아래의 선선한 그늘.


태양이 달아오르기 전, 사람들이 하나둘 잠에서 깨어난다. 오늘의 태양은 불의 비극이 아니라 축제의 무대 위에 설 준비를 하고 있다. 사람들의 육신은 지쳐있고, 기력은 쇠잔해져있다. 이제 사람들의 욕망은 정신적 충족이 아니라 육체적 충만을 위해 불끈 일어선다. 그들의 위장은 허기에 잦아들고, 굶주림에 요동친다. 부족의 젊은이들 몇이 바다를 향해 축제를 위한 여정을 떠난다. 노인과 여자들은 사냥해온 물고기들을 가장 깊고, 오래 그늘이 지는 바위의 모래 아래에 묻어둔다. 물고기를 묻는 손길이 정성스럽다. 그들은 오랜만에 단꿈을 꾸는 듯 행복한 표정이다. 물론 오늘의 축제를 위한 물고기들은 따로 준비해두었다. 해변으로 가는 젊은이들은 축제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늘 때에 맞춰 다가오는 축제지만 한 번도 들뜨지 않은 적이 없다. 그들에게는 똑같은 물고기라도 늘 같은 맛일 수 없다. 맛을 잊을 때가 되어서야 겨우 다음 축제가 오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젊은이들이 바다에 닿는다. 염전은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젊은이들은 해변 한 편에 일구어놓은 염전에서 마른 소금을 거둬들이고, 부서진 염전의 벽을 보수하고, 소금의 결정을 모으고, 빈 염전에 바닷물을 채운다. 염전 일을 마치면 소금을 배낭에 채워 넣고 처소로 돌아올 채비를 한다. 이번 소금은 유난히 단맛이 좋다. 몸은 물먹은 소금처럼 무거우나 발걸음은 날듯이 가볍다. 젊은이들은 소금으로 가득 찬 배낭을 어깨에 메고 돌아오는 길을 재촉한다. 축제 준비는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관객들은 태양이 무대 위로 떠오르기만을 기다린다. 정오가 지나자 사람들은 조금씩 더위에 지쳐간다. 하지만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소금 배낭에 흠뻑 젖은 젊은이들이 바다에서 돌아오고 축제는 절정을 맞을 준비를 한다. 태양의 불. 사막을 가르는 날 선 불의 검. 그러나 사람들은 이제 죽음을 휘두르는 불이 아닌 생명의 불을 기다린다. 가장 뜨거운 불의 때에 족장은 준비된 물고기들을 검은 바위 위에 올린다. 검은 바위는 이미 불타고 있다. 몽롱한 열기. 무엇이든 태워버릴 듯 아득하게 불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달구어진 바위는 물고기의 아래 살을 익힌다. 위로 드러난 살을 익히는 것은 불의 주인인 태양의 몫이다. 사람들은 생선구이 몇 토막으로 긴 세월의 굶주림을 단숨에 잊는다. 굶주림의 세월은 이미 흘러가버렸다. 잘 가라, 허기의 세월이여, 대자연 속에서의 굶주림이여. 우리는 이제 너를 잊었으니 다시는 돌아오지 말기를. 잘 익은 물고기와 잘 마른 소금…. 자연이 이룬 완벽한 맛의 조화 속에서 사람들은 행복에 잠긴다.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들은 살을 발라낸 물고기의 뼈조차도 함부로 내버리지 않는다. 잔가시 하나, 굵은 뼈 한 토막 남기지 않고 모두 그들의 몸으로 삼는다. 망각의 강에서 잡아 올린 물고기들은 그들의 살과 피가 되고, 깨어진 육신의 그릇을 메워 한 방울의 영혼도 새나가지 않게 막는다. 배고픈 과거는 강의 물고기들을 따라 과거로 흘러가버린다. 그렇게 축제의 하루가 저문다.


사막의 불은 아무것도 불사르지 않는다. 이미 모든 것이 타버렸기 때문이다.

사막의 불 속에서는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미 모든 것이 흔적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막의 불은 어떤 생명도 불사르지 못한다. 불의 영역은 생명의 껍질까지 뿐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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