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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미증유의 대지

미증유의 대지 #24 . 벽 없는 미로

*

폭풍우는 다시 거세졌다. 바다는 분명 거대한 파도로 이글거리고 있을 것이다. 선장은 뱃사람답게 최악의 날씨를 골라 선원들의 집을 방문하러 나갔다. 오늘의 저녁식사는 안심 스테이크와 양배추 샐러드였다. 거실 유리문이 바람에 덜컹거렸다. 노파는 천둥이 울릴 때마다 차를 한 모금 마셨고, 나는 유리문이 덜컹거리는 소리에 맞춰 고기를 썰었다. 하늘은 대낮에도 밤처럼 어두웠다. 어두운 하늘 아래에서는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비가 잦아들면 골목을 산책하고, 오늘처럼 폭풍이 쏟아지는 날에는 방과 거실을 오가며 책을 읽었다. 이렇게 긴 우기가 일 년 내내 이어진다면 나는 아마도 시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멍바위가 있는 처소에서 강까지는 7일 밤낮을 꼬박 걸어야 해.”

노파가 말했다.

“중간에 쉬게 되면 강에 이르는 길을 잃고, 걸어온 길로 되돌아가는 길만 남거든.”

노파는 피곤해보였다.

“길이 사라진다는 뜻입니까?”

내가 물었다.

“사막은 활짝 열린 미로야. 길을 잃으면 찾을 수 없어.”

나는 노파의 주름이야말로 미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노파는 구불거리는 길이 아니라 벽이 없는 공간이 오히려 미로라고 말하고 있다.

“강까지 가는 7일 동안에는 무얼 먹습니까?”

“비가 내릴 때가 아니면 갈 수 없어. 비가 유일한 식량이니까. 고된 여정이지.”

노파의 어깨가 구부러지고 있었다.

“쉬셔야 할 것 같습니다.”

노파의 차는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다음에는 사막의 다른 곳,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게.”

노파는 다기의 뚜껑을 덮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