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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미증유의 대지

미증유의 대지 #30 . 강과 눈물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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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막 사이의 물물교환은 곧 축제다.


모래사막의 사람들은 초원의 사막 사람들에게 소금을 준다. 소금을 전달할 때는 보통 한 달 이상 비가 내리지 않는 기간을 선택해서 전달한다. 소금을 전할 때가 되면 부족의 젊은이들이 모두 모여 염전에 소금을 걷으러 간다. 한 번에 전달하는 양은 보통 초원의 사막 사람들이 일 년 이상 먹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모래사막의 사람들은 일 년에 두 번 소금을 보낸다. 소금이 모래사막을 떠날 때가 되면 젊은이들은 이동하는 중에 마실 물과 먹을 소금을 넉넉히 챙겨둔다. 소금 부대는 청년 한 명이 두 개씩 멘다. 소금은 망각의 강 위를 지나지 못하기 때문에 강 상류의 바깥쪽을 돌아 육로로 전해진다. 행렬은 사이사이에 휴식을 취하며 한 달에 걸쳐 먼 길을 걷는다. 초원의 사막 사람들도 소금을 받기 위해 초원의 사막을 걷는다. 초원의 사막 사람들은 열흘이면 강 상류에 닿는다. 그들은 말을 타고, 키우는 짐승들을 이끌고 간다. 초원의 사막 사람들은 짐승의 가죽과, 말린 고기와, 나무칼과 살아있는 짐승 몇 마리를 모래사막 사람들에게 답례로 준다. 산 짐승들은 모래사막에서 오래 살 수 없기 때문에 거처에 돌아가자마자 부족민들의 식량이 된다. 물물교환 기간은 두 부족 간의 상봉의 날이기도 하다. 떠난 자들과 남은 자들은 서로 껴안고 안부를 물으며 긴 상봉의 즐거움을 나눈다. 만남은 일주일 동안 계속된다. 사람들은 고기를 잡고, 달디 단 호수의 물을 마신다. 강 건너편 사막으로 장가 든 남자들은 각자의 사막에 남은 부모, 형제, 누이들과 긴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막의 사람들은 각자의 사막이 주는 자유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래사막의 사람들은 결핍과 피난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과 식량의 부족, 불타는 태양, 거센 바람, 모래폭풍이 주는 고통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 극한의 결핍 속에서 얻는 이슬 한 방울의 맛, 따스한 빗물의 맛, 폭풍이 지나고 난 후에 찾아오는 평화와, 맑은 대기와, 눈부신 모래의 지평선이 주는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초원의 사막 사람들도 자신들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풍성한 먹을거리와, 호수의 노래와, 시원한 나무그늘과, 포근한 바람과, 잔잔한 비와, 밤마다 하늘에 떠오르는 빛나는 꽃들에 대해서… 그들은 서로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가 가진 행복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이렇게 행복은 가끔 이해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또 서로의 행복을 무시하거나 애써 부러워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대지와 그 대지 속에서의 삶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일주일간의 축제 동안 그들은 한 가족처럼 지낸다. 예전부터 원래 한 가족이었으나 지금은 서로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 한 가족처럼 말이다. 축제의 마지막 날 아침에는 모두가 얕게 흐르는 강물에 무릎을 꿇고 옛 초록의 대지가 돌아오기를 기도한다. 그들의 기도는 간절하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 각자에게 주어진 행복 속에서 더욱 행복해지기를… 고통 가운데에서도 가능한 한 행복하기를… 그들이 누리는 행복이 오래 그들과 함께 하기를… 초록의 대지가 돌아와 모두가 함께 살 수 있게 되기를… 두 부족의 영혼이 연결되어있는 것처럼 그들의 육체도 가까이에서 함께 살고, 모두가 서로의 임종을 지켜줄 수 있기를… 그들의 기도는 눈물이 되어 강물 위에 떨어진다. 강인한 사막의 사내들의 얼굴에서도, 붉게 그을린 어머니들의 얼굴에서도, 주름 가득한 노인들의 얼굴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아이들은 강가에 앉아 어머니와,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들의 눈물이 강 위에 떨어지는 모습을 본다.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네 방울… 얕은 강물 위에 무릎 꿇은 자신의 선조들의 눈물이 어떻게 강의 근원에 닿는지를 낱낱이 바라본다. 강은 흘러내려가지만, 그들의 눈물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 강의 뿌리로, 샘의 근원으로 돌아가고, 그렇게 눈물 섞인 강은 다시 그들이 무릎 꿇은 자리를 지나 강의 하류로 흘러내려간다. 강물이, 그 얕은 강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샘부터 끓어오른 강물이 흘러내려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강은 김을 뿜으며 힘차게 끓어오른다.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흘러내리고, 강물은 쉼 없이 끓어오른다. 아이들은 지켜본다. 아이들은 강가에 앉아 강과 눈물의 기적을 지켜본다. 이것으로 축제는 끝난다. 기나긴 눈물의 기도를 마친 두 부족은 다음 축제를 기약하고 짐을 정리하여 각자의 땅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