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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페이지 독서 - 르 클레지오, 홍수 https://youtu.be/FZYqojr5fZU 제가 르 클레지오의 작품을 소개한다면, 본래는 ‘사막’을 먼저 소개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제가 읽은 클레지오의 작품 중 첫 번째 소설이었구요. 참 좋은 문장들을 많이 만난 소설이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제가 읽은 책이나 읽던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새 책이 아니라 꼭 읽던 책을 주곤 하는데요. ‘사막’을 찾다가 제 사촌동생에게 선물한 게 떠올라서 아직 제 곁에 남아있는 ‘홍수’를 먼저 소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클레지오가 쓴 서문의 제목은 ‘1966년을 추억하며‘입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해가 되겠죠. 무려 53년 전의 일입니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 소설을 동시대의 사건으로 읽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고, 21세기의 프랑스 니.. 더보기
밤의 미소 https://youtu.be/U6OS4_4JMUQ 나의 밤이 또 한 번 죽고, 나는 여전히 다시 살아난다. 밤은 평생에 걸쳐 오랜 친구였고,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함께하는 친구였다. 밤은 하루에 하나의 생명을 소진한다. 그것이 나를 매일 슬프게 했다. 밤은 내게 깊은 어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것이 내겐 깊은 두려움이었다. 밤은 내게 스스로의 어둠을 감추지 않으면 어둠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한다. 밤은 아마도 저 대사를 읊조릴 때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둠 앞에 장님이 된 내 눈은 그의 미소를 보지 못했다. 나는 가끔 밤의 미소를 상상한다. 밤이 좋은 것은, 어김없이 온다는 것. 반드시 올 것이기에 작별은 슬프지 않다. / [A smile of the night] My night wi.. 더보기
인간이라는 책 https://youtu.be/f_VxzrJOriM 모두 네가 만날 사람들이야. 어떤 인간은 조금 읽어보다가 도로 책꽂이에 꽂겠지. 어떤 인간은 몇 줄을 읽기도 전에 지루해질 거야. 어떤 인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게 돼. 어떤 인간은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이해할 수 없어. 자, 이제 읽어. 무덤까지 가져갈 한 권의 책을 만날 때까지. 자, 이제 읽어. / [A book called Man] They're all people you'll meet. You'll read some people a little and put them back on the shelf. Some people will make you bored before you even read a few lines. You can read .. 더보기
인간은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https://youtu.be/HRDN_rLZyuo 인간은 낱낱의 한계를 두루 뭉쳐서 빚어놓은 한계 투성이의 리미티드 에디션입니다. 지능의 한계, 시력의 한계, 체력의 한계, 시간의 한계, 그리고 또 셀 수 없이 많은 한계들... 새로운 미디어들이 범람하면서 사람들은 '인간의 한계'를 생각하는 겸손함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이라이트'에 집중하고, 하이라이트를 본 것으로 다 보았다고 치부하는 버릇이 몸과 영혼에 배어가고 있습니다. 책의 표지와 몇 페이지, 영화의 몇몇 장면, 사람들의 이야기 몇 마디, 뉴스 속의 이야기 몇 조각만으로 우리는 쉽게 '모든 하이라이트를 보았으므로, 모든 걸 안다.'고 착각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5분, 10분짜리 유튜브 영상, 1분을 넘지 않는 인스타그램의 .. 더보기
더욱 아무것도 아닌 것 https://youtu.be/8P1a4W4fhYE 나는 바람의 한가운데에 있고, 어쩌면 나 역시 바람인지도 모른다. 아니, 바람이라고 믿고 싶은 먼지인지도 모른다. 나는 몽상가이고, 꿈은 내가 주인인 세상이 아니다. 나는 꿈을 연기하는, 나를 나라고 착각하는, 한 겹의 가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나에겐 아무런 힘도 없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앎이 깊어갈수록, 나는 더욱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간다. 나는, 어쩌면, 아마도, 무(無)가 의미 없이 세상을 향해 던진 무의 파편인지도 모른다. 나는 무의 파편이고, 영감의 파편이고, 무의미의 파편이다. 그렇게 나는 한 조각이다. 무한의 덩어리에서 뜯겨나간 한 조각의 파편이다. 나는 파편으로 무한대를 떠돌며 무한대가 품고 있는 모든 것들과 충돌한다. 그 모.. 더보기
어쩌면 실화일지도 모를 나의 이야기 5 - 사랑 https://youtu.be/tHpq3qrIXOI 내게는 이해하려고 아무리 애써도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랑의 경험이 있다. 그것은 쪼글쪼글한 한 노파로부터 얻은 것이다. 그것이 단지 혈연 때문이라고 이해하기에는 나는 아직 혈연 자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고 어린 존재였다. 세상에 이유 없이 주어지는 사랑이 있다면 그리스도 이후 최초의 것이었다고 할 만했던 그 사랑은 아마도 내가 처음 눈을 뜨고 세상을 대면했던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고 그 후로 12년에 걸쳐 지속되었다. 알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런 사랑이 존재하는지, 왜 그 대상이 나여야만 했는지, 그리고 그런 위대한 사랑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안개처럼 사라져버릴 수 있는지. 그 작지만 거대한 사랑의 바구니 속의 기억이 평생 내 살갗을 감싸.. 더보기
비의 언어에 관한 이야기 https://www.youtube.com/watch?v=tdpzdDtI1dg 장마죠? 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구요. 비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떤 비는 고맙고, 어떤 비는 재앙이 됩니다. 오늘은 오래 전에 비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읽으려고 하는데요. 어떤 분은 “비와 대화를 한다는 건 좀 이상하다.” 라고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 사람은 비뿐 아니라 세상 무엇과도 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것과의 대화는 불가능해.’라는 생각이 그것과의 대화를 불가능하게 할 뿐입니다. 읽어보겠습니다. 나에게 비는 제 2의 언어다. 비는 사람의 말처럼 음절로 소리 내지는 않지만 기쁨과 슬픔을 이야기하고, 때로는 자신이 고여 있던 호수의 풍경이나, 자신이 흐르던 계곡의 이야기, 혹은 자신이 부딪쳤던.. 더보기
당신이라는 계절 https://youtu.be/gNbctxTEL-U 나의 말이 그대를 향해 걸어간다. 나의 소리가 그대를 향해 불어간다. 긴 세월 언 땅 속에서 세월을 보낸 나의 말과 소리들이 이제야 자기의 계절을 맞이했다. 그래서 당신은 계절이다. 이제껏 존재한 적 없는, 제 5의 계절이다.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계절. 당신을 만나고 나는 노래를 잃어버렸다. 당신이 살아있는 노래였으므로. 나의 남은 삶이 당신이라는 계절 앞에 거짓이지 않기를. 나의 남은 삶이 당신이라는 노래 앞에 잘못 찍힌 음표가 아니기를. 내 인생, 단 한 번뿐인 계절. / [The season titled "You"] My language is walking towards you. My voice is blowing at you. The wo.. 더보기
가을에 죽어야 할 이유 https://youtu.be/1zkHpc0QLbk 가을은 너무 작아. 그래서 가을에 죽고 싶은 거야. 그 작은 가을에. 나 역시 이곳에서 작은 인간이었으니까. / [Reasons to die in the fall] Fall is too small. That's why I want to die in the fall. In that little fall. Because I've been a little human here, too. 더보기
생명 3부작 - 2 '죽음' https://youtu.be/0YBfFgKpAIM 보통, 죽음이 멀리 있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은 찰나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은 시간적 순서에 따라 삶의 끝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을 긴 시간 동안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은 최근에야 다시 삶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주변에서 혹시 “나는 요즘 죽음을 준비하고 있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50대도, 60대도, 70대도 살아갈 생각에 골몰할 뿐 죽음을 곁에 두고 사색하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삶이 고되다는 의미이고, 오늘이 끝나는 순간부터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일 겁니다. 하지만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나, 좋은 죽음을 마음속에 그리고 준비하는 것은, 죽음뿐만 아니라 삶에도 좋은 자양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더보기
어쩌면 실화일지도 모를 나의 이야기 3 - 진화 https://youtu.be/SyntVSQApLY 가난이 길었다. 견딜만한 수준이기에는 꽤나 길었다. 평생 가난했던 인생들에게는 미안할 수준이었지만 참을성 없고 어리고 아직 세상을 직시할 만큼 투명한 눈을 가지지 못한 어린 짐승에게는 긴 세월이었다. 언뜻 셈해보니 15년이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까지만 해도 나름 풍요로운 가난이었다. 산나물과 텃밭과 마른 나뭇가지로 보낸 가난은 너무나도 낭만적인 궁핍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사랑과 신뢰가 있었다. 내일을 약속할 수 없는 미미한 수명을 지닌 존재들이었으면서도 오지 않은 내일보다 오늘의 가난한 행복에 더 충실했던 날들이었다. 물질계에 존재하는 모든 고통은 인간을 진화시킨다. 전진인지 퇴보인지는 불명확하지만 고통을 견딜 수 있는 괴상한 능력을 얻는 과정이기에.. 더보기
20190708 - 옥상 스케이팅 (+ music) https://youtu.be/wOySid8xyRI 땅에서 가장 가깝게 허공을 나는 기분... 더보기
정지. 말라버린 우물. 번 아웃(burn out) https://youtu.be/WnV6miTvSSI 말라버린 우물. 번 아웃. 빗물이라도 받아서 다시 소생하는 삶이기를. 당시의 내 주변은 기분 나쁜 공기로 가득했다. 습했고, 뜨거웠고, 녹슬어 있었다. 반 지하로의 이사가 그랬고(불행인지 다행인지 쥐가 있었다), 이사 이전의 벌레 먹은 쪽방에서의 생활과 원치 않는 이별로 인한 감정의 결핍이 그랬고, 이사 이후의 갇힌 듯 폐쇄적인 생활이 그랬다. 나는 오랫동안 취직하지 않았다. 돈의 결핍은 하루하루 나를 무덤 속으로 밀어 넣었지만 나는 곧 즐기는 기분으로 그 무덤에 적응해 갔다. 짐은 점점 가벼워졌다. 잦은 이사에 이골이 날 무렵 나는 짐을 줄이며 살기로 결심했다. 책들은 헌책방에 팔려나갔고, 가구들은 재활용센터에서 친절하게 수거해갔다. 짐이 줄어들수록 .. 더보기
가난한 둘이 만나면 더 가난해진다. https://youtu.be/25c19-0mxxU 가난한 둘이 만나면 더 가난해진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살아야 살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건 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미국의 재즈 트럼펫 연주자이자 가수였던 쳇 베이커는 '난 너무 쉽게 사랑에 빠져요‘ I fall in love too easily. I fall in love too fast. 라는 곡으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공감의 힘이지요. 공감의 폭이 넓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 길 위에 서있다는 의미일 겁니다. 하지만 앞의 곡과는 전혀 반대되는 제목의 ‘난 전에 결코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요’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라는 곡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랑의 의미를 모르고 사랑해왔다는 착각에.. 더보기
천국을 꿈꾸다 - 초원의 사막 https://youtu.be/n74bqUa9kd4 나는 늘 꿈을 메모한다. 한 순간, 한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꿈속의 장면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스쳐 지나가는 순간 속의 아름답고 정지된 풍경과, 눈동자를 파고들어와 마음을 어지럽히고 혼돈에 빠뜨리는 누군가의 얼굴을 잊지 않기 위해서. 나는 쉬지 않고 메모를 하고, 가끔 낯선 풍경에 둘러싸인다. 이제껏 밟아본 적 없는 미지의 대지. 때로 그곳은 빛으로 가득 찬 천국이기도 하고, 지옥 같은 불바다이기도 하다. 나는 그곳들을 기억해야만 한다. [초원의 사막] 사막이다. 서걱거리는 모래가 지배하는 불모의 사막이 아니다. 굳이 떠나야 한다면, 다시 돌아오고 싶은 사막이다. 심지어는, 얼굴과 피부조차 곱고 아름다운 사막이다. 이 땅은 과연 어떤 생명에게까지 삶을.. 더보기
생명 3부작 - 1 '탄생' https://youtu.be/_qlBoxxAiT8 인간이라는 존재의 세 가지 키워드라고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보통은 존재의 키워드와 삶의 키워드를 혼동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예를 들어, 돈, 명예, 건강, 쾌락 같은 것을 이야기한다면 이것은 존재의 키워드라기보다는 삶의 키워드에 가깝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존재의 키워드는 탄생, 여정, 죽음입니다. 존재의 시작점인 탄생. 축복이거나, 혹은 아쉽게도 축복 받지 못한 시작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생명의 탄생은 보통 기적에 비유됩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전쟁터에서조차도 새 생명이 태어나고, 잠시 총을 내려놓고 적국의 여자의 몸에서 나오는 아기를 받아든 한 병사는 생명의 신비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더보기
'읊조림'이라는 새 장르의 문학 https://youtu.be/25rqInp45Es 저는 오늘 ‘읊조림’이라는 문학의 한 장르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존재해왔으나 아무도 이름지어주지 않았던 장르이구요. 아무도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던 장르이기도 합니다. 읊조림은 서민들의 것이고, 민초들의 것이고, 삶을 사는 모든 사람들의 문학입니다. 그들이 삶에서 쥐어짜낸,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독백처럼 툭 튀어나오는 한두 마디의 말. 또는 이야기. 누군가는 그건 시로 분류하면 된다. 라거나, 우리에게는 이미 수필이라는 장르가 있다. 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존의 문학 장르들은 지식인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배운 자들만 쓰고, 배운 자들만 소비하는, 지식인들의 고급스런 놀이였다고나 할까요. 심지어는 노동계층의 삶 속에 드러난 그들의.. 더보기
어쩌면 실화일지도 모를 나의 이야기 2 - 무(無) https://youtu.be/vQRGuXX7QTs 나는 조금 일찍부터 ‘무’라는 개념을 손끝에 잡아보려고 애썼다. 뇌졸중으로 외할머니를 잃고 3년 만에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무렵이었다. 죽음이 인간에게서 별로 멀지 않다는 것. 죽음은 삶의 끝에 오는 것이 아니라 삶과 동시에 시작된다는 것. 죽음과 삶이 따로 있지 않고 삶의 바로 옆에 붙어있는 양수 속의 샴쌍둥이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달았고, 나도 모르게 죽음 너머의 세상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모르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상상 자체가 이미 혼돈이었고, 알 수 없다는 사실은 고통이었다. 숨 쉬는 인간에게는 영원한 미지의 영역. 바로 곁에 두고도 알 수 없고, 볼 수 없는 땅. 내가 처음에 그렸던 죽음은 암흑 속의 텅 빈 공간이었다. 우주와 닮.. 더보기
제목이 가장 마지막 줄에 있는 시 [제목이 가장 마지막 줄에 있는 시] 당신의 꽃 같은 얼굴을. 당신의 별 같은 얼굴을. 내 가슴에. 그리워진 당신의 모든 얼굴을 내 가슴에 담고. 가슴 위에 손을 얹고. 매일 밤. 이제는 가슴 속에서조차 희미해져 가는. 꽃 같은 당신의 얼굴을. 별 같은 당신의 얼굴을. 매일 밤. 쓰다듬기... 그리고 기도하기. 당신이 나의 목소리를 듣고 내게 왔듯이. 당신이 우연히 마주친 거리의 나를 따라왔듯이. 나를 당신 곁으로. 이제 나를 당신 곁으로. 당신 얼굴뿐인 가슴으로 살아온 나를. 이제는 당신 곁으로. 제목 . 당신을 먼저 떠나보낸 나의 임종을 맞이하여 / [A poem whose title is in the last line.] Your flower-like face.Your starlike face.In.. 더보기
유튜브가 재미있는 건 공감의 실험실 같은 느낌이랄까. 어떤 시도라도 해볼 수 있는 열린 놀이터라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