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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증유의 대지 #27 . 사막의 숨소리 **초원의 사막은 투명하다. 초원의 사막에서 물 긷는 일은 여자들의 몫이다. 아침이면 여자들은 가죽 부대를 들고 호숫가로 나간다. 이른 아침의 호수에서는 낮고 조용한 노랫소리가 들린다. 호수의 이곳저곳에서 수면을 가르는 바람들이 서로 스치고 부딪치고 어루만지는 소리…. 사람들은 이 소리를 호수의 노래라고 부른다. 여인들은 호수의 노래를 들으며 휴식을 취하고, 물을 긷고, 나무 아래로 돌아간다. 초원의 풀들은 새벽이슬을 품고 있다가 태양이 떠오르면 싱그러운 향기를 내뿜는다. 초원의 사막 사람들은 이렇게 풀들의 향기를 맡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들의 아침식사는 호수의 물이 전부다. 호수의 물은 달다. 호수의 물은 마치 세상의 모든 단맛의 결정체들을 녹여놓은 것처럼 맑고 달다. 해가 솟아오르고, 이슬이 마르면.. 더보기
미증유의 대지 #26 . 면회 *그를 처음 만난 곳은 그가 누워있던 병실에서였다. 마르고 병색이 완연한 어두운 보랏빛 피부를 가진 남자. 평소에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그는 소리를 내는 것조차 힘들어보였다. 그의 목구멍은 숨을 내쉴 때마다 그르렁거리며 쇳소리를 냈다. 그의 폐는 어둠에 갇혀있었고, 만약 그가 사망한다면 원인은 두말할 나위 없이 호흡부전이 될 것이었다. 질식사가 그에게 배당된 죽음의 얼굴이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나를 가로질러 내 뒤의 어떤 풍경, 나조차 볼 수 없는, 아니 아무도 볼 수 없는 어떤 희미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신기루를 쫓고 있는 것 같은 그의 눈동자는 어쩌면 더 이상 이 세상에 초점을 맞출 수 없게 되어버린 것 같아 보였다. 그를 대면한 첫날, 우리는 서로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것.. 더보기
미증유의 대지 #25 . 풀, 바람, 행복 **망각의 강은 두 사막을 가로지르고, 강의 끝은 바다에 닿아있다. 강의 아래로는 모래사막, 강의 위로는 초원의 사막이다. 흔히 사람들은 모래사막과 초원의 사막이 전부가 아니고 두 사막 너머에도 다른 사막이 있다고 믿는다. 초원의 사막 위로는 바다라고 불러도 될 만한 크기의 호수가 있는데, 호수 너머에는 아직 가본 사람이 없다. 초원의 사막은 녹색이다. 일 년 내내 녹색이다. 풀은 10센티미터 이상 자라지 않는다. 새로운 씨를 뿌려도 땅이 반응하지 않으므로 새로운 종자의 경작은 불가능하다. 초원의 사막에는 큰 나무들이 있다. 보통 큰 나무가 아니다. 전설에나 나올 법한 거대한 나무들이다. 나무들은 초원의 사막 사람들에게 지붕과 그늘이 되어준다. 그들은 강의 물고기를 먹고, 강과 호수의 물을 마시고 산다... 더보기
미증유의 대지 #24 . 벽 없는 미로 *폭풍우는 다시 거세졌다. 바다는 분명 거대한 파도로 이글거리고 있을 것이다. 선장은 뱃사람답게 최악의 날씨를 골라 선원들의 집을 방문하러 나갔다. 오늘의 저녁식사는 안심 스테이크와 양배추 샐러드였다. 거실 유리문이 바람에 덜컹거렸다. 노파는 천둥이 울릴 때마다 차를 한 모금 마셨고, 나는 유리문이 덜컹거리는 소리에 맞춰 고기를 썰었다. 하늘은 대낮에도 밤처럼 어두웠다. 어두운 하늘 아래에서는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비가 잦아들면 골목을 산책하고, 오늘처럼 폭풍이 쏟아지는 날에는 방과 거실을 오가며 책을 읽었다. 이렇게 긴 우기가 일 년 내내 이어진다면 나는 아마도 시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구멍바위가 있는 처소에서 강까지는 7일 밤낮을 꼬박 걸어야 해.”노파가 말했다.“중간에 쉬.. 더보기
미증유의 대지 #23 . 천국과의 조우 **도시는 차가웠다.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했다. 길, 건물, 간판, 가로등, 자동차, 항구 앞에 산처럼 쌓여있는 테트라포드까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거리는 가로등 덕분에 꽤 밝았다.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가 떠난 것 같았다. 잘 곳을 찾아야했다. 아직 여자라고 불리기에는 어색한 몸집의 여자아이는 항구 바로 앞에 있는 커다란 콘크리트 건물을 선택했다. 문이 열려있는 가장 큰 건물이었다. 바닷바람만 피할 수 있다면 잠들 수 있을 것이다. 아이는 바람으로부터 숨을 수 있도록 최대한 모서리 안쪽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별이 보이지 않는다. 비가 내리지 않는 날에 별을 보지 못하고 잠드는 건 처음이었다. 건물은 차가웠다. 손을 댈 수 있는 모든 면이 차가웠다. 손에 닿는 면이.. 더보기
미증유의 대지 #22 . 사막의 전설 *사막이 되어버린 대지는 한때 더할 나위 없이 비옥했다. 이 대지에 최초로 안착한 인류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그게 누구였든 이 땅의 비옥함은 방문자의 발을 놓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비옥한 생명의 땅. 비와 구름과 태양과 바람 모두가 오직 이 대지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아 보였다. 대지에는 이미 충분한 과실수가 있었고, 각종 채소들이 풍성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곡식을 위한 농지도 넉넉했다. 대지의 중앙에는 거대한 초록의 산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람들은 초록의 산을 대지가 가진 신비의 비밀로 여겼다. 대지는 그야말로 인간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신이 준비한 땅이었다. 사람들은 대지에서 과일과 곡식을 얻었고, 산에서 물과 나물과 약초를 얻었다. 산의 계곡은 깊고 아름다웠다. 계곡에는 일 년 내내 맑은.. 더보기
미증유의 대지 #21 . 사막의 불은 아무것도 불사르지 않는다. **태양 아래의 사막은 불의 세상이다. 불. 사막의 태양은 불 그 자체다. 사막 위에 서면, 마치 태양 위에 두 발을 딛고 선 것처럼 불꽃의 일렁임을 그대로 느끼고 볼 수 있다. 사방이 불붙어있다. 이글이글 타오른다. 태양의 칼날을 피할 그늘이 없다면 태양 앞에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 태양이 지배하는 대지의 한가운데에 홀로 서지 마라. 네 어머니, 네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모든 어머니들이 너의 구원을 위해 태양 앞에 벌거벗고 서더라도 태양은 너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태양 앞에서 인간의, 혹은 인간적인 강인함은 먼지처럼 볼품없다. 태양의 불 앞에 가까이 선 자는 시간을 선물 받지 못한다. 태양을 보았다고 느끼는 순간에 그는 이미 한 줌 재가 되고, 타버린 재마저도 찰나에 먼지.. 더보기
미증유의 대지 #20 . 사막에서 무슨 수로 물고기를 *두 사람이 식사하는 소리와 한 사람이 차 마시는 소리. 식탁의 한가운데에는 낯선 여자가 꽂아두고 간 꽃다발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꽃은 노란색이었다.“아까 다녀간 여자는 누굽니까?”“나를 대신해 꽃집을 운영하는 사람이지.”노파가 대답했다.“나는 생명을 돌보기에는 너무 늙었어.”노파의 시선이 잠시 마당에 놓인 화분들에 머물렀다.“사막에서도 생선을 먹는다네.”선장이 화제를 돌렸다.“사막에서 무슨 수로 물고기를 잡습니까?”나는 눈이 동그래져 물었다.“강이 있거든. 더 이상 경작을 위한 젖줄은 아니지만 말이야.”노파가 웃으며 말했다.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사막이라면 꽤 근사하지 않은가. 그것은 마치 바다 한가운데에 떠있는 뗏목 위에 앉아 숯불에 소고기를 굽고 있는 풍경처럼 근사하게 느껴진다. 선장은 포크와 숟.. 더보기
미증유의 대지 #19 .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것들이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세상 **강물 아래는 고요한 소리의 세상이다. 비의 세상은 비의 음률이 영혼의 슬픔을 다스리는 세상이다. 물속의 세상은 조금 다르다. 물은 한없이 흐르지만 그 흐름을 소리 내지 않는다. 물속에는 소리가 없다. 아무소리도 없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침묵과 고요도 소리가 된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것들이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세상. 고요하지만 분주하게 살아있는 세상. 그곳에서는 소리를 내는 것들도 소리를 내지 않고, 소리를 내지 않는 것들도 소리를 낸다. 북이나 종처럼 소리 내는 것이 존재의 목적인 것들도 물속에서는 각자 숨을 죽이고 소리 내지 않는 것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 소리… 소리 내지 않는 것들의 소리…. 그 소리는 신비로운 울림을 지닌다. 아무도 그들이 소리 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더보기
미증유의 대지 #18 . 사막의 사람들은 무얼 먹고 삽니까? *끼이이이익…. 문 여는 소리에 잠이 깼다. 나는 여전히 노파와 선장의 집에 있다. 이번에는 앉아있지 않고 누워있다. 소박한 색을 지닌 꽃문양의 벽지로 둘러싸인 작은 방이다. 방은 내 방인 듯 아늑하다. 나는 손바닥 하나 높이의 매트리스 위에 누워있다. 아마 선장이 나를 들어 이 방에 옮겨다놓았을 것이다. 문을 여니 마당 맞은편으로 거실이 보인다. 치키치키치키치키…. 밥 짓는 소리가 들린다. 보슬비가 마당의 돌들을 적시고 있다. 거실 탁자에서는 낯선 여자가 노파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거실 창 옆에 못 보던 화분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둘 다 꽃이 피어있다. 흰 꽃과 노란 꽃. 낯선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싱크대 앞으로 가서 갓 꺾어온 듯 싱싱한 빛깔의 꽃다발을 정리해 화병에 꽂는다. 여자는 화병을 .. 더보기
미증유의 대지 #17 . 사막을 떠나다 **비는 봄의 것을 닮아있었다. 잠에서 깬 사람들의 눈동자는 유리처럼 맑았다. 우주의 회전이 멈춘 듯 조용한 밤이었고, 사람들의 꿈조차 연기처럼 고요했다. 사람들은 거처를 떠날 준비를 했다. 짐을 정리하는 움직임은 침착했다. 족장은 사람들의 수를 세었다. 비어있는 자리의 허전함을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은 족장의 뒤를 따라 길을 나섰다. 아무도 소리 내지 않았다. 그들은 소리 내는 법을 잊은 사람들처럼 조용히 젖은 모래 위를 걸었다. 자그락거리는 모래 밟는 소리만이 사막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먼 길이었다. 비와 구름은 여린 빗방울과 안개로 대기를 감싸고 불같은 태양의 기운을 막아주었다. 행렬의 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누구의 얼굴에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대.. 더보기
미증유의 대지 #16 . 노파와 감자, 평안한 일상 *밤이 깊어간다. 아마도 이미 자정을 넘겼을 것이다. 나는 탁자에 앉은 세 사람이 차를 몇 주전자 째 마시고 있는지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선장의 시선은 사진집의 마지막 페이지에 다가서고 있었다. 나는 지루해진 틈을 타 기지개를 켰다. 몸이 고사목의 껍질처럼 버석거렸다. 노파는 난로 위에 감자 몇 알을 올려놓았다. 나는 마치 먼 길을 느리게 달리는 낡은 대륙횡단열차 안에 앉아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거실은 내가 머무는 객실이고, 노파는 깐깐한 얼굴의 매점 주인이다. 선장은 내 맞은 편 좌석권을 가진 사람이며, 그는 지금 자기 자리에 앉아 활자가 최대한 절제된 한 권의 그림책을 보며 소일하고 있다. 매점 주인인 노파는 조금 전에 난로 위에 감자를 올려놓았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저 뻣뻣하게 마른 .. 더보기
[묵상] 존재의 슬픔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슬프다.유일하게 거짓으로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그렇기에, 삶에 끝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youtube : https://www.youtube.com/channel/UCXbdgLjkg7QQxFqAglMiJ0Q 더보기
미증유의 대지 #15 . 어제의 어제처럼, 어제의 먼 어제처럼, 그 머나먼 어제의 어제처럼, **비의 위로가 아직 끝나기 전에, 비의 위로만으로는 위로받지 못하는 영혼이 있었다. 영혼은 비의 때가 깊어진 후에도 하룻밤조차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비의 나날들이 이어질수록 슬픔은 더욱 깊어졌다. 영혼은 원망할 대상도 허락받지 못했다. 기도라도 해보려고 입술을 열어보았지만,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관을 짤 나무조차 구할 수 없는 사막에서 영혼은 마치 자신이 관 속에 든 시체 같다고 느꼈다. 존재한다면 분명 목적이 있을 텐데, 존재하지만 삶의 이유가 없으므로 존재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고 느꼈다. 갈림길에서는 하나의 길을 선택할 수 없을 때 다른 길을 선택하면 된다. 그러나 이 가여운 영혼에게 주어진 길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매일이 눈물이었다. 비에게 고마운 것은 눈물을 감출 수 있게 해준다는 것. .. 더보기
미증유의 대지 #14 . 결핍이 이룬 천국 *“사막은 결핍의 천국이야.”노파가 이야기한다.“모자라는 거 천지지.”“그래서 떠나신 겁니까?”내가 물었다.“그곳에서 살 운명이 아니라고 했어. 그러니 떠나야한다고.”“누가 그 운명을 점친 겁니까?”“아버지…”노파는 아까와는 다른 차를 내왔다. 차는 시고 떫었다. 노파는 잠시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세상의 모든 현상을 다 주워섬길 것만 같은 일장연설이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각종 지식 논쟁과, 태양과, 동물과, 식물과, 우주와, 독재와, 즐거움과, 부유와, 증오와, 교육과, 자유와, 가족과, 책과, 욕과, 시인과, 농사와, 아름다움과, 경멸과, 은혜와, 어머니와, 음악과, 인내와, 혈통과, 밤과, 과일과, 바다와, 열정과, 그림과, 대지와, 형태와, 성장과, 허식과, 실체와 그림자, 노동… 등.. 더보기
미증유의 대지 #13 . 비의 가르침 **사막은 여전히 비의 때를 지나고 있다. 바람이 상처와 고통의 시간이라면 비는 치유와 위로의 시간이다. 구름이 연기처럼 사막을 덮고, 비가 마른 사막을 초원처럼 적실 때면 사막의 사람들은 모두 사막에서 풀이 자라나지 않을까 기대하고는 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모래알에는 이끼조차 덮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종일 비의 음률에 귀를 기울인다. 천상의 음악이 바로 이럴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비의 때는 주기적으로 오지만, 올 때마다 다른 곡을 들려준다. 비의 레퍼토리에는 같은 곡도, 마지막 곡도 없다. 비의 때에 사람들은 매일 몸을 씻는다. 빗줄기가 굵어질 때는 벌거벗은 채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한다. 비의 때는 모두에게 행복한 축제다. 마음껏 비를 마실 수 있고, 마음껏 몸을 적실 수 있고,.. 더보기
[삶] 봄 안의 가을 몇 해 전부터인가 봄 안에 가을이 숨어들기 시작했다.짧아진 가을에 대한 보상인지, 아니면 봄부터 이미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들을 향해 보내는 가을의 전보인지...아무튼 찬 공기와 청명한 하늘이 참으로 좋다. youtube : https://www.youtube.com/channel/UCXbdgLjkg7QQxFqAglMiJ0Q 더보기
미증유의 대지 #12 . 눈으로 볼 수 없는 모든 것을 믿는 것 *거실에서 흔들리는 것은 촛불뿐이다. 선장은 미동도 하지 않고 동상처럼 앉아 사진을 들여다본다. 사진집의 제목은 바다(Sea)다. 선장의 어머니는 여전히 차를 홀짝거린다. 노파가 건넨 책은 땅이 아니라 흙을 묘사하고 있다. 수십 페이지 내내 흙 얘기다. 그 다음은 산의 이야기다. 산과 흙. 비옥한 흙과 흙을 돌보는 종으로서의 산. 씨만 뿌리면 풍년으로 답하는 손 안 가는 기름진 흙에 대한 지루한 이야기이다.“어머니가 쓴 책이네.”선장이 말한다.“그렇군요.”노파는 자리라도 비켜주려는 듯 거실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간다.“이곳은 어디인가요? 이런 땅이라면 무슨 농사를 지어도 풍년이겠는걸요.”“자네가 가고자하는 곳.”“그곳은 사막입니다.”“어머니가 쓴 글은, 사막에 대한 이야기네.”“그러니까 그곳은 사막입니다.. 더보기
미증유의 대지 #11 . 사막의 사람들은 배를 기다리지 않는다. **바람의 때가 가고, 비와 구름의 시간이 온다. 구름은 더 이상 자신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할 만큼 무거워 보인다. 사람들의 젖은 눈동자가 반딧불처럼 반짝이며 빛난다. 구름이 무거워지는 만큼 세상도 어두워진다. 태양에 그을린 낯빛이 어두운 대기 속에 잠기며 하나의 색을 가진 덩어리로 융화한다. 모공이 열리고, 대기가 살에 스며든다. 느린 호흡으로 흐르는 자연의 시간 속에서 사람들의 껍질이 점점 윤곽을 잃어간다. 흰자위에 검은 점으로 박힌 또렷한 두 눈동자만이 그들이 인간임을 드러낸다. 얼굴은 없고 눈동자만 숨 쉬는 인간. 몸은 없고 눈빛만 살아있는 인간. 빛이 일정한 조도 아래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가로등이 켜지는 문명의 어둠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의 형상이다. 그들의 눈동자는 이미 바람의 고통을 .. 더보기
[삶] 세월은 이미 나보다 빨리 흘러가 있다. 모든 것은 자유를 향한 갈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자유, 내가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을 자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늙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자유……. 그러나 자유의 값은 세상의 그 어떤 가치 있는 것보다 비싸고, 고되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애틋함이 담겨 있다. 그것은 나의 고된 일상에 대한 애틋함이기도 하고, 내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위해 내가 포기한 자유에 대한 동정심이기도 하다. 그렇다. 모든 것은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나는 물러설 수 없었다.태어나서 처음 겪는 물류센터의 일상은 반병신이 된 몸으로 감당하기에는 질이 좋지 못했다. 아프리카보다 덥다는 여름과 러시아보다 춥다는 겨울을 상온팀의 비닐 창고에서 보냈다. 그리고 이제 세월은 이미 나보다 빨리 흘러.. 더보기